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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장편소설추천_한강 작가의 신작 『희랍어 시간』, 희랍어가 전하는 깊은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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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희랍어 시간』: 침묵과 빛이 교차하는 순간...

 침묵과 빛의 이야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한강의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은 한 여자의 침묵과 한 남자의 빛을 주제로 한 이야기입니다. 이 작품은 언어와 감각,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내면을 깊이 탐구하며, 서로 다른 상처를 가진 두 인물이 교차하는 순간을 그려냅니다. 


1. 말을 잃은 여자와 빛을 잃어가는 남자

여자의 침묵

소설 속 여자는 열일곱 살 겨울, 아무런 전조도 없이 말을 잃습니다. 이유 없는 침묵은 그녀의 삶을 둘러싼 하나의 큰 주제로 자리 잡습니다. 이후 여자는 결혼과 이혼을 겪고, 아이의 양육권마저 잃으면서 다시 말문이 막히게 됩니다. 이러한 상실은 그녀를 외부 세계로부터 단절시키고, 죽은 언어인 '희랍어'를 배우기로 결심하게 만듭니다. 그녀의 침묵은 단순한 말의 상실을 넘어,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 기제로 작동하는데, 이는 소설 속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남자의 빛

한편, 여자가 찾은 희랍어 강사는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남자입니다. 그는 빛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삶의 여러 변화를 겪으며, 결국 여자의 침묵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마주하게 됩니다. 시력을 잃어가며 남자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점점 더 몰입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녀와 소통하기 위해 애쓰지만, 여자의 침묵은 그에게 두려움을 안겨줍니다. 남자의 ‘빛의 상실’은 여자의 ‘말의 상실’과 병치되어, 두 인물 간의 관계는 서로의 결핍을 통해 형성됩니다.


2. 희랍어: 죽은 언어에서 새롭게 태어난 언어

희랍어의 상징성

여자는 말 대신 희랍어를 선택합니다. 이미 사멸한 언어인 희랍어는 그녀에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동시에, 다시금 말을 잃을 위기에 놓인 그녀의 내면을 투영합니다. 희랍어는 소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녀 스스로와의 대화,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되짚는 하나의 방법으로 작용합니다. 또한, 이 죽은 언어는 그녀가 잃어버린 것들과 재회하는 통로로서 소설 내에서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언어의 경계와 소통의 한계

작가는 이 죽은 언어를 통해 말과 소통의 본질을 묻습니다. 말을 잃은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 사이의 소통은 완벽하지 않으며, 두 사람은 서로의 침묵 속에서 더듬거리며 대화를 시도합니다. 그들의 소통은 언어의 경계를 넘어서는 비언어적 차원에 이르며, 소설 속에서는 이러한 소통의 한계가 인물들 간의 관계를 더욱 긴밀하게 만듭니다.


3. 빛과 어둠: 흑백사진 같은 서사

빛과 어둠의 대비

『희랍어 시간』은 마치 흑백사진을 연상시키는 서사로 구성됩니다. 남자는 점차 시력을 잃어가고, 여자는 말을 잃고 침묵 속에 갇힙니다. 한강은 이 두 인물의 상실을 통해, 빛과 어둠이 교차하는 순간을 예민하게 포착합니다. 소설 속에서 빛은 단순히 시각적 요소로서의 의미를 넘어서, 상징적이고 감정적인 깊이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남자의 시력 상실은 인생의 밝음을 잃는다는 의미와 연결되며, 이는 독자에게 삶의 무상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흑백사진 같은 묘사

한강은 소설 속 인물들의 감정과 경험을 절제된 문체로 풀어나가면서, 흑과 백 사이의 명암처럼 인물들 간의 관계와 서사를 그려냅니다. 사진이 빛과 어둠으로만 완성되듯이, 『희랍어 시간』 역시 군더더기 없는 절제된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독자는 이를 통해 깊이 있는 상상과 내면의 탐색을 경험하게 됩니다.


4. 침묵과 기미: 존재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

침묵 속에 감춰진 기미

작가는 이 소설에서 '침묵'을 중요한 요소로 삼아, 독자들이 인물들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도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여자의 침묵은 단순히 말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억눌린 감정과 내면의 갈등을 담고 있습니다. 그녀의 침묵은 고통과 상실을 의미하는 동시에,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어막이자 치유의 과정입니다.

과거의 흔적과 현재의 만남

소설은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교차하는 장면을 통해, 인물들이 겪은 상처와 치유의 과정을 그립니다. 한강은 이러한 시간적 흐름 속에서 '존재의 흔적'을 따라가는 여정을 묘사하며, 독자들은 인물들이 지나온 삶의 흔적을 더듬어 보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기억'과 '시간'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됩니다.


5. 한 장의 사진처럼: 응시와 기다림의 미학

사진과 서사

소설 속에서 사진은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사진을 찍는 행위는 한 순간을 영원으로 만드는 과정이며, 이는 소설의 서사 구조와도 닮아 있습니다. 한강은 이러한 사진의 의미를 빛과 어둠으로 가득한 서사 속에서 풀어나가며, 독자들에게 인물들의 상실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희망을 보여줍니다. 마치 오래된 흑백사진을 응시하듯,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침묵과 빛 속에서 피어나는 감정을 천천히 느낄 수 있도록 합니다.

기다림의 미학

사진이 현상되기 위해 기다려야 하듯, 인물들의 상처와 치유도 시간을 필요로 합니다. 소설은 이러한 기다림의 과정을 통해 인물들이 겪는 내면의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내며, 독자들은 그들의 아픔과 회복 과정을 함께 경험하게 됩니다.


침묵과 빛의 교차점에서

삶의 본질을 향한 여정

『희랍어 시간』은 단순한 상실의 이야기를 넘어서, 침묵과 빛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합니다. 한강은 이 소설을 통해 언어와 시간, 그리고 감각의 경계를 넘어서 독자들에게 깊이 있는 사유와 감정의 여정을 선사합니다. 말을 잃은 여자와 빛을 잃어가는 남자, 그들이 마주한 순간은 우리에게 존재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다시금 묻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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