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728x90
    반응형
    진짜와 가짜 사이, 그 경계에 선 사람들 – 성해나 소설집 《혼모노》 


    ‘진짜란 무엇인가?’ 이 오래된 질문이 요즘처럼 절실하게 다가오는 때가 또 있을까. SNS에서, 뉴스에서, 주변 사람들의 삶에서조차 우리는 끊임없이 진위(眞僞)를 가려내야 한다. 누군가의 성공이 과연 실력인지, 혹은 누군가의 진심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성해나 작가의 두 번째 소설집 《혼모노》는 이 질문을 정면으로 파고든다. ‘진짜와 가짜’의 구별을 넘어서, 그 애매하고도 서늘한 경계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내면과 사회의 풍경을 예리하게 묘사한다.



    ‘혼모노’ – 의미부터 의심하라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혼모노》는 일본어 ‘혼모노(本物)’에서 따온 말로, 원래는 ‘진짜’, ‘진품’이라는 뜻이지만, 최근에는 인터넷 문화 속에서 ‘진상’이나 ‘이상한 사람’을 지칭하는 부정적인 신조어로도 쓰인다. 성해나는 이 단어의 중첩된 의미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진짜’가 어떻게 소비되고 왜곡되는지를 날카롭게 그려낸다. 더불어 ‘진짜’라는 것이 얼마나 쉽게 뒤틀리거나 오용될 수 있는지도 함께 보여준다.

    치밀한 취재와 강렬한 서사

    성해나는 첫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에서 따뜻한 시선으로 타인을 이해하려는 이야기를 풀어냈고, 장편소설 《두고 온 여름》에서는 과거의 오해와 상처를 어루만지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이번 소설집 《혼모노》에서는 한층 더 예리한 시선과 서늘한 서사를 들고 돌아왔다. 지역, 정치, 세대와 같은 구조적인 틀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소외되고, 또 그 안에서 어떻게 생존하는지를 짚어간다.

    수록작 중 표제작인 「혼모노」는 그 상징성과 힘으로 단연 압도적이다. 무속이라는 전통적 신앙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현실이 얽히며, 누가 진짜 무당이고 누가 가짜인지를 따지는 문제 너머의 깊은 생존과 정체성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진짜’라는 말이 얼마나 폭력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읽는 내내 감정의 파도를 몰고 온다.



    “길티 클럽”의 쾌감과 죄의식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도발적이다. 죄의식을 동반한 쾌락, 불온한 감정의 저변을 파고드는 이 작품은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이중성, 도덕과 욕망 사이의 갈등을 흥미롭게 그린다. 통제된 동물, 고무망치, 그리고 그 안에서 느끼는 희미한 흥분은 독자에게 도덕적 혼란과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단지 어떤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 전체의 일그러진 축소판처럼 보인다.

    정치적, 사회적 리얼리즘의 최전선

    성해나의 소설에는 일관되게 사회적 맥락이 배경에 깔려 있다. 「스무드」는 외국인을 통해 바라본 한국의 정치 상황과 아이러니를 묘사하며, 한 인물이 특정 정치인을 향해 느끼는 열광과 맹목을 통해, 진짜와 가짜가 전복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 작품에서 ‘한국의 링컨’이라 불리는 대통령의 초상은 웃음을 유발하는 동시에 깊은 불안을 남긴다. 다수가 믿는 것이 과연 진짜인가, 아니면 믿고 싶은 것이 진짜가 되는 것일까?

    여성 서사의 새로운 결

    《혼모노》의 여러 작품에서는 특히 여성 인물들의 내면이 정밀하게 그려진다. 「잉태기」에서는 여성으로서 겪는 가정과 육아의 부담, 그리고 미묘한 죄책감과 분노가 복잡하게 얽힌다. 그 감정은 절대적이기보다는 인간적으로 흘러가며, 독자는 그 안에서 공감의 지점을 찾게 된다. 또한 「우호적 감정」에서는 사람들이 함께 웃고 떠드는 장면 속에서 혼자 딤섬을 씹지 못한 채 머금고 있는 주인공을 통해, 겉으로는 평온한 일상에서도 개인이 느끼는 고독감과 단절을 정교하게 표현한다.

     

     

    하루의 의미를 되새기다: 차인표 소설 그들의 하루 리뷰 추천

    차인표 소설, 그들의 하루지금 구매하기위로와 감동이 담긴 하루의 이야기: 차인표의 소설 《그들의 하루》삶이 고단한 당신에게 하루의 소중함을 전하는 차인표 작가의 소설 《그들의 하루》

    jjlovely.tistory.com

     

    진짜로 살기 위한 고통스러운 싸움

    이 소설집의 인물들은 대부분 진짜가 되기 위해, 혹은 진짜라고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무당이 되려는 사람, 음악을 포기하지 못하는 청춘, 가족 안에서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려는 여성 등. 그러나 ‘진짜’가 되는 길은 언제나 험난하고 외롭다. 특히 마지막 작품인 「메탈」에서는 잊힌 음악과 과거를 통해,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한 치열한 내면의 분투가 그려진다. 진짜가 되기 위해서는, 진짜로 남기 위해서는, 때론 과거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는다.

    ‘혼모노’라는 이름으로, 지금 우리 시대를 통과하다.

    성해나는 잘 쓰는 작가를 넘어, 지금 이 시대의 풍경을 예리하게 절단하고, 그 속의 감정과 갈등을 서늘하게 펼쳐내는 작가다. 《혼모노》는 단편소설집이지만, 각각의 작품이 연결되어 하나의 질문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진짜인가?’ ‘진짜로 산다는 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단지 문학 속 인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이 소설을 읽고 있는 독자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정교한 언어와 날카로운 통찰, 그리고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독창적인 서사 감각. 성해나는 지금 한국문학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이름이며, 《혼모노》는 그 증거다. 이 책은 ‘진짜’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되묻고 싶은 독자라면 반드시 만나야 할 작품집이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