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728x90
    반응형

    한강의 두 번째 장편소설: 『그대의 차가운 손』 - 삶과 예술의 경계에서

    한강은 한국 문단에서 독특한 감수성과 깊이 있는 문체로 널리 알려진 작가입니다. 특히, 그녀는 2016년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수상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대의 차가운 손』은 그녀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예술과 인생, 인간의 내면에 대한 심도 있는 통찰을 담아낸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라이프캐스팅'(인체를 직접 석고로 떠서 작품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조각가 장운형을 중심으로 두 여주인공의 삶과 그들의 상처를 조명하며, 예술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의 진실과 고통을 탐구합니다.

    독특한 예술 세계의 조각가, 장운형

    작품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조각가 장운형은 인체를 석고로 떠서 작품을 만드는 '라이프캐스팅' 기법을 통해 예술을 창조합니다. 그의 작업은 단순한 예술적 표현을 넘어, 인간의 내면을 응시하는 과정입니다. 장운형은 어렸을 때부터 주변 인물들의 외면과 그들이 감추고 있는 내면의 고통을 날카롭게 관찰해왔습니다. 어머니의 이중적인 웃음과 삼촌의 마디 잘린 손가락에서 느낀 상처는 그를 조각가로 이끄는 중요한 동인이 되었습니다.

    장운형이 바라보는 두 여주인공, 비만으로 고민하는 여대생 L과 차가운 외모를 지닌 인테리어 디자이너 E는 각기 다른 상처를 지니고 있습니다. 조각가는 그들의 외면을 석고로 뜨면서, 동시에 그들의 내면을 응시하고, 그 과정에서 삶의 진실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얻게 됩니다.

    두 여주인공의 상처와 진실

    장운형이 석고로 떠낸 첫 번째 대상은 비만으로 고민하는 여대생 L입니다. L은 외적인 모습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심지어 의붓아버지로부터 성폭력을 경험한 과거의 상처까지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각가의 작업을 통해 L은 자신에게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하기 시작합니다. 조각가는 그저 외면을 뜨는 것이 아니라, L이 가진 내면의 상처와 그녀가 감추고 있던 고통을 함께 떠내려는 듯한 작업을 이어갑니다.

    두 번째 대상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E입니다. E는 외적으로 차갑고 완벽해 보이지만, 그녀도 어린 시절 육손이라는 신체적 결함으로 인해 놀림을 당하며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녀는 현재 수술을 통해 신체적으로는 정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그 기억에 얽매여 있습니다. 장운형은 그녀의 차가운 외모 속에 숨겨진 내면의 상처를 발견하고, 그녀의 몸을 석고로 떠내는 과정에서 서로의 아픔을 어루만지며 가까워집니다.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수수료를 받습니다.

    액자소설 구조와 진실의 발견

    『그대의 차가운 손』은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작품 안에서 주인공인 조각가 장운형의 이야기가 중심이지만, 그 밖에 '나'라는 또 다른 화자가 존재합니다. '나'는 연극을 보러 갔다가 장운형의 작품을 우연히 마주하게 되며, 그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 '나'라는 인물이 장운형의 노트를 읽으면서 소설의 주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작품은 마치 양파 껍질이 벗겨지듯, 점진적으로 주인공들의 진실과 상처를 드러냅니다. 조각가는 두 여주인공의 인체를 석고로 떠내면서 그들의 삶 속에 숨겨진 깊은 비밀과 고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방식은 독자로 하여금 소설 속 인물들의 내면을 천천히 응시하게 하며, 궁극적으로 인간의 본질과 그들이 감추고 있는 진실에 대한 깊은 성찰을 이끌어냅니다.

    삶의 상처를 어루만지는 예술의 힘

    한강은 이 소설을 통해 삶의 고통과 상처를 어떻게 예술로 승화시킬 수 있는지를 탐구합니다. 장운형이 라이프캐스팅 작업을 통해 L과 E의 육체를 석고로 뜨는 과정은 단순히 신체의 형상을 모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의 내면을 치유하고 상처를 드러내는 과정입니다. 석고로 떠낸 인체는 그 자체로 고통스럽고, 불완전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한강이 계속해서 탐구해온 주제인, '삶은 상처'라는 실존적 명제를 소설 속에서 강렬하게 부각시키는 부분입니다.


    서늘한 사랑, 그대의 차가운 손

    소설은 제목에서부터 서늘한 감정을 자아냅니다. '그대의 차가운 손'이라는 표현은 등장인물 E의 차가운 외모와 성격을 상징하는 동시에, 조각가 장운형이 발견한 인물들의 내면적 고통을 나타냅니다. 사랑과 인간관계는 따뜻하고 포근해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이 소설에서는 오히려 그 차가움 속에서 진실한 사랑과 연민이 피어납니다.

    조각가와 두 여주인공의 관계는 표면적으로는 매우 차갑고 낯설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차가움 속에서 피어나는 것은 진정한 인간적 교감과 서로의 상처를 응시하는 눈길입니다. 한강은 이러한 서늘한 사랑의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삶의 깊이를 다시 한번 상기시킵니다.


    소설은 장운형이 사라진 후 그의 유고전에서 끝을 맺습니다. '나'는 유고전에서 실종된 장운형과 E일지도 모를 남녀를 목격하지만, 그들은 이내 행인들 속으로 사라집니다. 이 결말은 독자들에게 많은 여운을 남기며, 인간의 진실과 사랑은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불가해한 영역에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대의 차가운 손』은 단순한 서사적 전개를 넘어,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물고, 인간 내면의 상처와 고통을 응시하는 깊은 통찰을 담고 있습니다. 한강 특유의 서늘한 문체와 인간 본질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잘 어우러진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특별한 소설로 기억될 것입니다.

    반응형